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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연기하는 시인, 드니 라방(Denis Lavant)

무드인포 2025. 5. 16. 17:30

 

프랑스 영화에서 단 한 명의 배우만 기억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드니 라방이라고 말할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처음 마주한 그의 연기는 단순히 '연기'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몸짓과 표정, 그리고 침묵과 광기로 완성된 하나의 시(詩)였고, 그 순간 이후 나는 그의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Georges Biard / Wikimedia Commons

사랑, 고통, 자유를 몸으로 연기하다

드니 라방은 말보다 몸으로 이야기하는 배우다. 어린 시절부터 마임과 무용을 접한 그는 정통 연극 교육을 받았음에도, 고전적인 대사 전달보다 신체 표현에 더 깊은 애정을 보인다. 그가 화면을 지배하는 방식은 묘하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시선을 빼앗고, 대사를 하지 않아도 감정을 전달한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그는 노숙자 미셸 역을 맡아, 부서질 듯한 사랑과 생의 나락을 오가는 복합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풀어낸다. 파리의 밤하늘 아래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술에 취한 채 뛰어오르고 넘어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무용이자 시였다.

 

레오스 카락스와의 운명적 조우

 

드니 라방과 감독 레오스 카락스는 프랑스 영화사의 가장 강렬한 콤비 중 하나다. 카락스의 감각적인 영상 언어와 라방의 신체적 연기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든다.

  • 《Boy Meets Girl》(1984)
  • 《나쁜 피》(Mauvais Sang, 1986)
  •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 1991)
  • 《Tokyo!》(2008)
  • 《홀리 모터스》(Holy Motors, 2012)

특히 《홀리 모터스》는 그가 얼마나 다채롭고 유연한 배우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 영화에서 하루 동안 여러 인물로 변신하며, 인간 존재의 모순과 허무를 체현한다. 광기 어린 눈빛,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 노파 분장까지... 그는 ‘배우’의 개념을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드니 라방의 주요 대표작

작품명 감독 특징
Boy Meets Girl (1984) 레오스 카락스 카락스와의 첫 협업, 도시의 고독
나쁜 피 (1986) 레오스 카락스 누벨바그 계승, 스타일리시한 액션
퐁네프의 연인들 (1991) 레오스 카락스 사랑과 자유의 비극적인 몸짓
Beau Travail (1999) 클레어 드니 시적인 군대 영화, 남성성 탐구
Mister Lonely (2007) 하모니 코린 채플린으로 변신한 기이한 존재감
Tokyo! (2008) 레오스 카락스 기괴한 도시 괴물 ‘Merde’로 출연
Holy Motors (2012) 레오스 카락스 배우의 본질과 정체성을 탐구
Gagarine (2020) 파니 리에타르 외 도시 재개발과 소외된 청춘 이야기
 

인터뷰에서 엿본 그의 철학

그의 연기에 관해 라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화보다 신체성에 더 관심이 있었다. 초기 20세기 영화에서 몸이 표현하는 능력에 매료되었다."
— 드니 라방, tank.tv 인터뷰

 

또한 레오스 카락스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관계는 전통적인 우정이 아니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매우 독특한 관계다."
르몽드 인터뷰, 2024

 

이 짧은 문장들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인지 느낄 수 있다.

 

프랑스 내 최근 활동 및 반응

 

드니 라방은 여전히 프랑스와 유럽 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단순한 ‘배우’라기보다는, 하나의 살아 있는 전설로 존경받고 있다.

  • 2025년 1월, 파리 시네마 Pathe Wepler에서 열린 신작 Brûle Le Sang 시사회에 참석해 관객과의 대화를 나눔
  • 스웨덴 감독 존 스쿠그의 영화 If War Comes에 출연해 스웨덴어 연기에 도전함
  • 2025년 3월, 빌뉴스 국제영화제 30주년 행사에서 마스터클래스 진행 및 Q&A 참여

그는 어떤 역할이든, 어떤 언어든 자신의 신체와 감각으로 흡수하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드니 라방을 좋아한다는 것

 

드니 라방을 좋아한다는 건, 감정과 신체, 그리고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진실한 고통과 사랑을 느끼고, 말없이 표출되는 감정에 동화된다.

그는 연기를 ‘한다’기보다, 그것을 '살아낸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 한가운데에 남아 있다.

 


드니 라방의 영화는 국내에서 보기 쉽지 않은 작품도 많지만, 왓챠, 무비(MUBI), 시네필 전용 온라인 상영회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나는 지금, 무엇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가?”